계기는 정기구독하고 있는 시사IN의 기사, "다큐의 바람이 분다...당신을 위한 네 편의 영화" 였다. 9월 동안 열리는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화제들과 관련하여 추천할만 한 영화들 네 작품을 소개하였는데, 그중 특히 시선을 끈 것이 바로 이 "위로공단" 이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미술상을 받았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주 배경이 내가 지난 3년간 일하고 살아왔던 구로공단과 (지금은 가산디지털단지로 바뀐) 가리봉동이라는 점에서, 아 이건 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은 (또는 그런 척을 하는) 사람이지만, 정작 국내에서 가장 큰 공단이었던 구로/가산이 어떤 곳이었는지 제대로 마주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냥 중국인, 외국인노동자가 많고 중소IT기업의 무덤이라는 것 정도로만 인지하고 있을 뿐.


※이후 사진은 별도의 언급없이는 다음영화에서 제공되는 "위로공단" 스틸컷임[다음영화 링크]


지난 주에 "오피스" 라는 다소 괴상한 영화를 본 바람에, 제대로 된 영화를 보고싶다는 욕심이 들었던 터에 급하게 상영관을 찾아보았지만, 이런 독립영화는 늘 그렇듯이 시간대도 상영관도 잘 없어서 급하게 아침부터 이천에서 버스타고 와서 이수역 아트나인에서 보게 되었다.


노동문제의 본질



이 영화의 주 골자는 어디까지나 다큐멘터리, 노동운동을 했던 또는 진행 중인 여성 노동자들의 인터뷰와 관련 자료들이다. 70년대 직공들이 얼마나 가혹한 현장에서 인간이 아닌 부품으로 대우받고 힘든 노동을 해왔는가, 노동운동은 절대 욕심이 아니라 생존권, 인권의 문제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폐허가 된 과거의 흔적들은, 당시의 사건들은 이미 끝난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사실은 모습을 달리하여 여전히 이어져 오고 있다.



최근에는 그나마 다양한 매체로 재생산되어 친숙한 문제일 수도 있겠다, 파견/비정규직이라는 형태로 노동권을 짓밟는 행위들. 기륭전자 해고문제.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카트", 웹툰 "송곳"으로 익숙한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협상과 이랜드 홈에버 해고문제.


당신에게 '일'은 무엇입니까?



거기에 다산콜센터 직고용 문제와 스튜어디스 인권 문제 사례를 포함하여, 현대 노동의 문제는 육체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감정노동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이라는 것의 주체인, 감정이 있는 '사람'을 빼먹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사실 위의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충격적인 것은 바로 캄보디아에 있는 직공들 이야기였다. 70-80년대 구로나 가리봉에서 행해지던 그 착취 행위가, 그 때만큼 심하지는 않다고하나 개발도상국으로 넘어가 반복되고 있었다. 특히 캄보디아 한국 의류공장에서 임금상승에 대한 시위가 있었을 때, 공수부대가 투입되어 실제 총을 발표하여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태가 있었고, 여기에 해당 한국 의류기업이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마저 있다. 


이주 노동자나 다문화 가정 등으로 이미 사회문제의 범위는 넓어지고 있지만, 한민족이라는 허구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 배타적 이기주의 틀에 갖혀 이자스민 의원 때처럼 되려 혐오의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것뿐만 아니라 현대 글로벌 시대에서는 국내 회사들이 싼 인건비라는 명목으로 많이 진출해 있는 중국이나 베트남, 캄보디아 등 해외법인으로도 노동운동의 시선을 확장해야 하는 것이다. 


정적인 이미지를 통한 관객과의 대화



이런 노동에 대한 다큐멘터리의 메세지가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인터뷰와 관련 자료 중간중간에 나오는 여성노동자를 형상화한 다양한 이미지들이다. 위 스틸컷과 같이 젊은 여성이 눈과 귀를 막은 모습으로 노동자들이 처한 절박함을 전달하는, 일종의 행위예술적인 장면들도 인상적이지만, 떼지어 날아다니는 까마귀들이나 개미를 이용해 다소 차분하게 이미지화했다. 그리고 관련 사건들을 재구성하기보다는 그들이 지내온 공간을 독특한 색감으로 보여주면서 영상미를 추구함과 동시에, 사건들에서 한 발짝 떨어져 좀더 차갑게 바라보게 하면서도 관객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며 대화하려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터뷰 때 컷 구성도 확실히 일반 다큐멘터리와 다르게, 인물 표정 클로즈업이 아닌 다소 관망하는 듯한 카메라 무빙이 인상적이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외치는 현 시점에서...


최근 박근혜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고, 결국 9월 13일 저녁에 결국 노사정위원회에서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조건 완화'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경향신문 "[속보] 노사정 일반해고 취업규칙 타결...대타협 협의" ) 일반해고는 저성과자나 근무불량자를 해고하는 것이고, 취업규칙 완화는 근로자에게 불리한 사규를 도입할 때 근로자의 동의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경제가 저성장이 지속되어 청년층의 일자리가 없으니 나이 많은 사람들이 좀 양보하자라며, 특히 연일 대형노조를 때리면서 언론플레이한 결과가 결국 먹힌 것인데. 임금피크제 같은 경우는 어느정도 공감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정부가 청년 일자리를 늘이겠다며 홍보한 것이 대부분 청년인턴제와 같은 비정규직 중심이라는 점을 비추어 보았을 때, 과연 그 저의가 진정 노동자를 향한 것인지, 기업을 향한 것인지는 두고봐야 알 일이다. "위로공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해당 내용들에 대한 법규가 지정되어 있던 상황에서도 노동자의 노동권을 무시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이어져 왔는데, 과연 이를 완화했을 때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충분히 마련될 것인가. 


이런 시점이기에 "위로공단"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하는 영화다. 특히 여타 노동관련 영화들처럼 지나치게 감정에 호소하는 것도 아니고(그 방법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다소 차분한 시선에서 국내 노동사에 대해서 쭉 보여주면서,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계속적인 질문을 던지며 그 노동의 개념을 확장시켜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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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immi


드디어 11월 29일, 강풀의 원작만화([링크])에서 시작하여 5년간의 진통을 겪어 태어난 영화 <26년>이 개봉하였습니다. 본인은 2006년 당시 대학교 2학년 때 운동권 학회를 통해 원작만화를 처음 접했었고, 이후로 강풀이란 만화가의 팬이 되었었죠. 


그런데 그것을 영화화한 작품이, 크랭크인 직전에 투자금이 빠져서 엎어질 위기에 쳐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개봉하고 싶어서 대국민 펀딩을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든 돕고싶은 마음에 5만원을 냈었습니다. 당시에 꽤 화제가 되었고, 1980년 5월 16일 광주에 있었던 일을 알리고픈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대국민 펀딩은 목표금액을 채우지 못하고, 후원금은 환불받게 되었죠. 그러나 이를 계기로 26년을 후원하고자 하는 다른 개인투자자분들이 합류하여, 결국 이번에 개봉하게 된 것입니다. 하여간 정말 개봉일만을 기다리던 작품이고, 드디어 오늘 친구랑 홍대입구역 롯데시네마에서 보게 되었네요.


'그분'에 대한 분노


<트로피코 4>란 게임이 있습니다. 심시티와 비슷한 경영시뮬레이션 게임인데, 독재자가 되어서 트로피코라는 외딴 섬을 경영하는 게임 시리즈의 최신작이죠. 게임 점수는 경영 도중에 자신이 해외 스위스 계좌로 빼돌린 돈의 액수에 따라 결정되는, 독재자들에 대한 풍자가 목적인 게임입니다. 최근 스팀할인도 했고 유저한글화를 통해 한글로 즐길 수 있기에 국내에도 즐기는 분들이 많죠. 로딩 중에는 독재자의 명언도 나오고요. 거기에 '그분'의 말도 나타나죠.



위의 스크린샷과 같이 말이죠. 516 광주참사를 만들고, 후 재판을 통해 억대의 추징금을 지불하도록 판결받았으나 전 재산이 29만원이란 명언을 남기며, 그걸로 고급차를 타고 골프도 치고다니면서 전직 대통령으로 아직도 살아있는 권력으로 존재하는 그분, 이 영화는 그분의 만행을 폭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각주:1]






516 당시 아비규환의 현장, 거기서 남은 자들의 고통, 또 당시 그런 명령을 집행해야만 했던 자들의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보며 자라온 이들의 분노와 고뇌. 그리고 그일을 자행한 당사자의 뻔뻔함.


영화라 그런지 원작영화에 비해 더 강렬하게 묘사되고, 덕분에 몰입해서 보다보면 계속 그 상황에 대한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연기자들의 연기도 괜찮고. 전 요즘 가뜩이나 눈물이 많아져서 정말 보는 내내 울기만 했어요. 


516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그분이 제대로된 사과를 하고 합당한 벌을 받지 않는 이상,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그분이 아직도 살아있는 권력으로 행동하고, 그것을 보호해주는 우리나라의 공권력에 대한 분노. 그것은 상당히 노골적이어서, 영화에 대한 외압이 충분히 있을만 하다고 생각됩니다.


516과 전두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일깨우는 것에는 확실히 성공한 영화입니다.


우리가 가져야할 고민은?


하지만 이 영화, 좀 아쉽습니다. 원작만화도 본지 오래되어서 원래 이런 내용이었는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분노, 슬픔, 허탈과 같은 감정적인 면에만 충실하여, 516이 정확히 어떻게 발생하였는가, 그것에 담겨진 의미는 무엇인가, 이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풍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한 516의 장면도 그렇습니다. 조금 입모양과 목소리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점도 아쉬웠지만, 무엇보다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으면서 그 장점을 크게 살리지 못한 것 같다고 해야하나요. 당시의 공포나 광기, 분노를 좀더 이미지적이나 색감으로 표현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긴한데, 단순히 본 영화의 공백을 채우고 잔인한 장면 묘사에 초점을 맞추어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거북할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애니메이션이지 처음에 의아해 했지만 찾아보니 제작비 문제가 걸려서 그렇게 재현했다는군요 .이런 식으로라도 국산 애니메이션이 스크린에 조금씩 드러날 수 있는 점은 기쁘지만요. 


또 아무래도 원작에 비해 많이 압축되다보니 장면 전환이 빠르고 내용이 좀 급전개하는 면도 아쉬운 점이네요.


다시 확인한 사회적 주제에 대한 지지




앞서 부정적인 말을 했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가지는 의의는 큽니다. 위의 마지막 스탭롤에 보여지는 것과 같이 1만 5천여명 이상의 국민들이 함께 영화를 만들었고, 그를 통해 사회적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을 확인할 수 있었죠. 특히 최근 용산참사를 다룬 <두개의 문>이나 김근태씨가 당한 고문에 대한 <남영동1982>에 대한 호응과 함께 더이상 정치적 주제가 독립영화에서만 맴돌 주제가 아니라 일반극장에서 상영될만큼 대중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어찌보면 예술인, 영화인들의 정치에 대한 자각이 표출된 것일 수도 있겠구요.




너무 감정적인 면만 자극하고 애매한 결말이 아쉽지만, 아직도 진행형인 516과 독재자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이키는 영화 <26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국민이 한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재미적인 측면에서도 볼 만한 영화고, 추천합니다.



26년 (2012)

7.8
감독
조근현
출연
진구, 한혜진, 임슬옹, 배수빈, 이경영
정보
드라마 | 한국 | 135 분 | 2012-11-29
글쓴이 평점  


  1. 이명박의 명언도 나온다. "돈 없는 사람이 정치하는 시대는 끝났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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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im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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